[남·별·이]'70살 문학소녀' 김인숙 씨 "내게는 모두가 사랑이었다"

등록일자 2024-04-21 08:00:01
젊은 날 역경, 신앙의 힘으로 희망 일궈
아버지 사업 실패로 가장 역할..다섯 동생 뒷바라지
주경야독으로 33살에 대학 교수 임용
"우여곡절 인생 스토리, 소설로 엮어보고파"
[남·별·이]'70살 문학소녀' 김인숙 씨 "내게는 모두가 사랑이었다"

'남도인 별난 이야기(남·별·이)'는 남도 땅에 뿌리 내린 한 떨기 들꽃처럼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여기에는 남다른 끼와 열정으로, 이웃과 사회에 선한 기운을 불어넣는 광주·전남 사람들의 황톳빛 이야기가 채워질 것입니다. <편집자 주>

▲대학 교정에서 산책 중인 김인숙 씨

3년 전 대학 강단에서 정년 퇴직한 김인숙 씨는 소설가를 꿈꾸는 늦깎이 '문학소녀'입니다.

고등학교 때 신문사 주최 백일장에 나가 상을 받은 기억이 50년이 넘은 지금껏 문학도의 꿈을 간직하게 했습니다.

아울러 올해 칠순인 그녀가 살아온 파란만장한 삶이 펜을 들게 하였는지 모릅니다.

김 씨는 광주광역시 누문동에서 제재소를 운영하는 부잣집 맏딸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친의 사업이 어려워져 하루 아침에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더구나 실의에 빠진 아버지가 술에 의존하는 바람에 집안 형편은 더욱 궁핍해졌습니다.

◇ 고등학교 졸업 후 세무서에서 근무

고등학교를 마치고 세무서에 들어간 김 씨는 동생들까지 챙겨야 하는 소녀가장이 됐습니다.

돈을 벌어서 가족들을 부양하는 한편, 성인이 된 동생 다섯을 결혼까지 시키며 뒷바라지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배움의 갈증을 풀기 위해 조선대 야간 대학에 다니며 억척스럽게 '주경야독'의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마침내 막내 여동생까지 출가시키고 홀가분해지자 수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수녀원 입회 승인을 마치고 기다리던 중, 대학원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시간강사 추천이 들어왔습니다.

이 때 김 씨는 조선대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상태였습니다.

면접 당일 합격통보를 받고 그날부터 목포과학대학 강사로 교수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33살이었던 그녀는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용아생가에서 문학회원들과 함께 한 김인숙 씨(맨 오른쪽)

"학장님이 서류와 나를 한참 살펴보시더니 오늘 저녁 수업부터 강의할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갑자기 귀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의 운명은 수녀가 되는 길보다 교직에 들어 말로써 사람을 살리라는 운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뒷날 학장님께 왜 저를 당일부터 강의를 맡겼는가 물어보니, 오전에 유명대학 출신 지원자가 다녀갔는데 세 번째로 온 나의 모습이 당당해 보였을 뿐 아니라 머리 뒤로 후광이 보여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하셨다"고 후일담을 전했습니다.

◇ 33년 동안 무려 29개 과목 강의 맡아

김 씨는 33년 동안 대학에 재직하는 학생들만 바라보며 묵묵히 직분을 수행했습니다.

사립재단의 부조리함 앞에서도 한번도 고개 수그리지 않고 견뎌낸 생활이었습니다.

경영과에서 정보경영과로, 관광경영과로, 다시 사회복지과로 강의과목이 바뀌면서 무려 29개 과목을 맡겨올 때도 열심히 공부하며 강단에 섰습니다.

학교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명예퇴직을 강요할 때도, 명퇴금을 주고 강의와 연구실을 보장한다는 회유가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년마다 한번씩 돌아가면서 하는 학과장을 한번도 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야 했습니다.

▲김인숙 씨(오른쪽)가 용아생가 자료관에서 문학회원들과 합평하는 모습

그 와중에 7년 전 유방암이 발병해 힘든 고비를 겪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완치돼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김 씨는 정년 퇴직을 앞두고 기념문집 '내게는 모두가 사랑이었다'(시와사람刊)를 펴냈습니다.

여기에는 자작시 90여편과 아들 정영훈 씨의 시와 글, 33년 동안 교수생활의 소회와 학생들과의 소중한 추억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 '24절기' 시로 표현한 작품집 출간 앞둬

김 씨는 퇴직 후 공허한 일상을 메우기 위해 여러 가지 취미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 중 하나가 고등학교 때 수상의 기쁨을 안겨준 글쓰기였습니다.

처음에는 원로 소설가 문순태 씨가 지도하는 담양 생오지문학교실에 참여해 한 학기동안 소설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어 3년 전부터는 광주에서 집필 중인 박혜강 소설가의 지도 아래 습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년퇴직 기념문집 '내게는 모두가 사랑이었다' 표지

이처럼 글쓰기에 매달리는 이유는 젊은 날 우울했던 가족사와 신앙의 힘으로 희망을 일궈낸 인생 스토리를 소설로 엮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김 씨는 "미국 소설가 마거릿 미첼이 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인상깊은 작품을 남기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내년에는 24절기를 시와 함께 민화로 표현한 작품집을 고희기념으로 출간할 계획입니다.

현재 사단법인 어울림다문화센터 대표와 힐데가르트성녀 영성연구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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