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수 칼럼]도시재생, 주민 삶과 공동체 환경 우선해야

등록일자 2023-04-12 09:52:42
문화적 가치 외면한 상업적 개발은 근시안적 정책
원형유산 사라진 뒤 아카이브 구축은 무의미
▲일신방직 화력발전소 건물과 굴뚝. 1935년 화순탄광에서 석탄을 가져와 공장가동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했다. 사진: 김현 사진작가

한 장소에 대한 풍경은 그 대상물이 사라진 후에도 오랜 세월 사람들의 집단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특정 장소에 대한 인지된 물리적 특질을 ‘장소성(場所性)’이라고 합니다. 장소성이란 어느 공간이 인간의 경험과 문화가 쌓여 다른 장소와 구별되는 총체적인 특징을 의미합니다.

최근 광주 도심에 재개발사업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장소성이 상실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형성된 동네가 어느 순간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과거의 흔적들이 지워져 버리고 아파트 숲으로 바뀌면서 그곳에 축적된 유·무형의 문화적 자산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개발로 많은 유·무형의 문화적 자산 사라져

최근에만 보더라도 동구 중흥동, 서구 양동·월산동·광천동, 남구 방림·주월동, 북구 중흥동·유동·임동 등 곳곳에서 도시정비사업과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옛 모습과 흔적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보존가치가 높은 근대문화유산인 경우 근래 20년 사이 광주에서 100곳 중 20곳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철거된 건축물은 조대부고 본관, 전남경찰청 민원실, 조흥은행 충장지점, 뉴 계림극장, 현대극장, 수피아여중 특별교실, 송정극장, 대우전기 등 20곳에 달합니다. 경전선 열차가 다니던 남광주역 역사는 2001년 철로 이설과 함께 서둘러 철거됐습니다.

특히 최근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북구 임동 옛 일신·전남방직 공장 건물에 대한 근대산업유산 보존 문제는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 방직공장은 일제강점기 1935년 가동을 시작한 광주산업화의 상징이자, 10대 여공들의 눈물 어린 노동의 현장이었습니다.

현재는 상업지역으로 도시계획이 변경돼 상당 부분에 복합쇼핑몰과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국제설계공모 당선작으로 덴마크 어반에이전시의‘모두를 위한 도시’가 선정되었지만, 상업적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장소성에 입각한 근대산업유산의 가치를 담아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런데, 행정당국은 또 한편으로는 문화관광자원 발굴과 도시재생을 명분으로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 사업을 펼치는가 하면 아카이브 구축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역사유산은 원형보존이 생명입니다. 역사유산이 사라진 뒤 아카이브 구축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트러스 구조로 이루어진 발전소 내부 모습. 사진: 김현 사진작가

◇유럽 국가들 문화를 매개로 노후지역 재생

도시재생 혹은 재개발사업은 산업화·도시화가 빨랐던 유럽 도시들에서 일찍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유럽국가들과 우리나라 도시재생 방식은 매우 상이한 차이점을 보입니다. 유럽은 제조업의 쇠퇴로 낙후된 지역을 문화를 매개로 ‘창조도시’를 건설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빌바오효과’입니다. 스페인 빌바오시는 조선·철강 산업이 쇠퇴하자 문화와 예술을 접목해 도시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영국에서 ‘빌바오효과’를 거둔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포크스톤(Folkstone)지역입니다.
한적한 해변 휴양도시인 이 곳은 구 시가지 일부를 개발해 현대미술관을 짓고 포크스톤 트리엔날레를 개최해 소금기 어린 도시를 예술관광도시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방직공장 내에 설치된 고가수조. 극락강에서 물을 끌어와 공장내부 습도를 유지하고 화재시 방화수로 사용했다. 사진: 필자

또한 영국 제2의도시 버밍엄(Birmingham)은 오래 전 가동이 멈춘 카스테라 빵 공장을 개조해 젊은이들이 창조적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창작스튜디오를 꾸몄습니다. 이곳에는 모두 500여 명의 예술가와 소규모 창조기업이 들어와 역동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표면적으로는 낙후된 도시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도시재생의 명분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 진행과정에서는 부동산개발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자본 논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능한 한 층수와 용적률을 높여 아파트와 상가를 최대한 늘리는 고밀도 개발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광주에서의 고밀도 재개발은 비단 특정지역 역사와 정체성의 소멸뿐 아니라 광주정신의 상징인 무등산 경관마저 시야에서 가려버림으로써 공동체의 구심점을 약화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원주민과 저소득집단이 소외되지 않는 개발

이는 오랫동안 그 지역에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장소에 대한 애착과 문화적 연대감이 상실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지속가능한 도시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개발 과정에서 개발주체의 이익을 줄이더라도 그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만족감을 높여줘야 합니다.

영국 킹스칼리지 지리학과 로레타 리즈 교수는 “도시재생이 사회적 관점보다는 경제적 관점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며 “원주민과 저소득집단이 배제되지 않는 예술주도 도시재생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광주의 유구한 역사와 정체성,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면서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생태문화도시를 건설하는 공동체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그 길만이 광주를 지속가능한 선진 문화도시로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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