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탐·인]'의병장 화가' 김도숙.."항일지사이자 문인 화가"(2편)

등록일자 2024-03-24 08:00:01
김도숙 일대기 담은 그림 20m로 전시
'의병장' 담은 120호 대작 6점 그려
김도숙 의병장 작품과 자료 묶어 출간
'남호찬록' 해석..최열·홍영기 글 수록
"항일지사·문인 화가로 회화사에 남겨야"
KBC는 기획시리즈로 [예·탐·인](예술을 탐한 인생)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특집 기사는 동시대 예술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인간과 삶, 세상의 이야기를 역사와 예술의 관점에서 따라갑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소통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 2022년 무등현대미술관서 전시

▲박종석 화백은 의병장 김도숙이 시서화에 능한 서화가였다는 사실을 담은 평전을 출간했다. 사진은 김도숙 작 '매화'와 '해오라기와 갈대' 부분도.

- 김도숙을 발굴하게 된 계기.

"그런 의미에서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미술사가 최열 선생이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최 선생은 이미 김도숙을 알고 있었고 저도 제 작품을 오래전부터 알았는데 자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중적으로 곳곳을 헤매다 보니까 작품 몇 점 나왔어요."

- 김도숙 일대기 담은 20m 작품을 소개하자면.

"이 그림은 2022년 무등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할 때 20m 짜리를 그렸는데요. 김도숙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그렸고 그 다음에 그 외에 의병장들 6점 대작으로 한 120호짜리 2점을 그렸습니다."

- 전시회 작품 소개하자면.

"'사생취의(捨生取義)', 목숨을 버리고 의로움을 따른다는 말입니다. '사생취의-의병지사 김도숙의 삶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전시회는 2022년 11월 19일부터 12월 10일까지 무등현대미술관에서 열렸습니다. 김도숙의 일대기인 20m의 대작과 '면암' 최익현 선생 그림도 제가 오래 전에 그려놓은 것을 무등현대미술관에서 한 달 동안 전시하고 그랬어요. 대구형무소에서 수감 후 처형당한 16명의 의병장 인물상 등과 죽봉 김태원 의병장, 전해산 의병장, 심남일 의병장, 박사화 의병장, 나성화 의병장, 김도숙 도통장 등 수묵작품의 초상화 등 대형 작품들을 전시했습니다."

□ 의병 자료 및 그림 수록한 평전 출간

▲박종석 화백이 출간한'가석 김도숙 평전'과 김도숙이 남긴 '남호찬록'.

- 가석(可石) 김도숙 평전 소개.

"2022년 11월 1일  '사생취의-가석 김도숙 삶과 예술'이란 제목으로 <남호찬록> 및 <거의일기> 일부만 번역해서  출간했고, 금년 2월에는 김도숙 평전을 완결본으로 출간 했답니다. 2년 전 전시했던 김도숙 의병장의 작품들과 발굴 자료, 그가 찬술한 <남호찬록(南湖纂錄)>의 해석 자료와 함께, 최열 미술평론가의 <가석 김도숙론>, 홍영기 한국호남학진흥원장의 <남호찬록을 통해본 김도숙의 의병항쟁> 등의 글이 실렸습니다. 저는 <가석 김도숙 평전>을 썼습니다. 재단법인 아시아 인문재단이 기획하고, 나주문화원이 후원했습니다."

- 의병장 김도숙은 어떤 인물인지.

"김도숙(1872~1943)은 나주 봉황 출신으로 본명은 제현, 자는 도숙으로 1907년 12월 함평에서 심남일 의병장이 남평·보성·장흥 등지에서 의병 600여명을 소집하여 독자적인 의병부대 '호남의소'를 결성할 때 도통장으로 참여했습니다. 1908년 3월 강진 오치동 전투, 남평 장담원 전투, 1908년 6월 능주 노구두를 비롯하여 영암·나주·장흥·해남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해 전과를 올렸습니다. 1908년 10월 능주 석정 전투, 1909년 5월 보성 천동 전투 등에서 눈부신 활약을 전개했습니다."

▲김도숙이 그린 '백매도'

- 의병장으로서 활발히 활동했는데.

"네. 1909년 9월부터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이 전개되면서 의병들이 수세에 몰리자 심남일 의병장은 부득이 의병 진영을 해산했습니다. 김도숙 의병장은 능주 백웅치에 피신해 있다가 밀고로 붙잡혀 7년 간 옥살이를 했습니다. 이때 의병 활동을 적은 의적기와 남호계의 일원으로서 <남호찬록>을 남겼죠.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습니다."

□ <남호찬록>에 자작시와 그림 10여점 남겨

- 서화가로서 김도숙을 평가한다면.

"김도숙은 시, 서, 화를 겸비한 서화가였습니다. 그는 거사가 사전에 비밀이 누설되어 일제의 검거를 피해 25년 동안 은신생활을 하던 중에 전남 영광에 머무르면서〈노안도〉및〈괴송도〉등 다수의 뛰어난 문인화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가 남긴 <남호찬록>에 자작시와 그림이 남아 있습니다. 10여 점의 유작에는 김도숙 의병장의 화풍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김도숙의 유품 '벼루와 벼루집', 김도숙의 묘지 비석

- 화가로서 김도숙의 그림을 평가하자면.

"작품 <노안도〉는 매우 날렵하고 시원한 조형으로 비상(飛翔), 경쾌(輕快)라는 특징을 갖췄습니다. 특히 김도숙의 새와 갈대 모두가 살아 있어 생동감이 뛰어난 데다 가벼운 필치와 안정된 배치가 돋보여 원숙한 경지에 이른 솜씨가 잘 보이는 걸작으로 평가됩니다."

- 대표 시를 소개한다면.

"도통대장 김도숙 애국지사가 정미년(1907년) 10월에 의병을 모집하며 띄운 격문(檄文)의 일부분입니다.

강물의 외침을 듣고 갑옷을 떨쳐 일어날 것을 생각했고
산하를 보고 의병을 만들 것을 원했노라

사람이라면 누가 즐거이 죽는 의병이 되지 않으리오.
만약에 한 힘을 보태주신다면 결단코 백세에 향기로운 이름 남기리.

또 1919년 3·1운동 전에 기미재거(己未再擧)를 계획하며 김도숙이 성토한 글입니다.

삶은 매우 가볍고 의리는 오히려 무거우니 달의 활을 구하고 날의 화살을 구하라.

- 끝으로 하고 싶은 말.

"앞으로 '근현대 한국회화사에서 한 번도 조명되지 않은 항일지사이자 문인화가'를 회화사에 자리매김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 박종석 화백

▲박종석 화백

- 박종석 화백은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조선대 미술대학원 순수미술학과를 졸업하고 개인전 19회, 초대전 8회를 개최했다.
- '호남회화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학포 양팽손, 염재 송태회, 석현 박은용, 의병지사 김도숙 등 호남 역사인물에 대한 연구와 저서 출간, 전시회를 개최해 왔다.
- 호남회화 500년사에서 쓰여지지 않은 역사인물들 발굴에 30여 년 간 연구하면서 작품 제작과 동시, 호남 정신의 뿌리 찾기와 정신적 가치의 원형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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