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수 칼럼]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돈이다"

등록일자 2023-03-22 11:00:02
▲미국 연수중 뉴욕타임스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필자
33년간 지역 신문사에 몸담았던 필자가 퇴직 후 1년 반 만에 KBC광주방송 기자로 다시 언론현장에 컴백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한계상황에 처한 종이신문에서 매일 생존을 고민해왔던 필자로서는 거대한 자본과 정보통신 기술이 집약된 방송사라는 새로운 미디어에서 기사를 쓰는 일이 가슴 뛰는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디지털 저널리즘의 첨단 플랫폼이라 할 수 있는 포털에서의 기사 생산은 말 그대로 전쟁터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디지털 혁신은 기자의 역할을 크게 바꿔 놓았다

아울러 정확히 10년 전인 2013년 필자가 미국 언론현장을 견학하면서 예견한 현상들이 오늘날 우리나라 미디어산업의 현실로 펼쳐지고 있는 데 대해 새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미디어 산업에 불어닥친 디지털 혁신은 기자의 역할을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과거의 기자는 뉴스현장에서 취재한 내용을 기사화해서 데스크에 넘겨주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리고 언론사는 이 기사를 종이신문에 싣거나 방송에 송출하는 것으로 뉴스 생산이 마무리됐습니다.

그러나 종이신문과 포털, SNS, 방송이 융합된 오늘날의 멀티플랫폼 시대에는 기자도 언론사도 멀티 플레이어(multi-player)가 돼야 합니다.

디지털 저널리즘에 적합한 기자상(像)은 한마디로 종이신문과 포털, SNS, 방송을 두루 소화해낼 수 있는 전방위 저널리스트여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한 분야에 전문지식을 축적해야 되고, 때론 세일즈맨처럼 마케팅능력도 발휘해야 합니다.

◇미국 연수 때 만났던 로버트 J. 로젠탈 탐사보도센터 소장

이러한 기자상의 전환과정을 가장 잘 보여준 인물이 미국 연수 때 만났던 캘리포니아 왓치의 로버트 J. 로젠탈 탐사보도센터 소장입니다.

▲로버트 J. 로젠탈 탐사보도센터 소장

뉴욕타임스에서 사환으로 시작해 40년간 기자로 근무했으며,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리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편집국장을 역임한 그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변화하는 미디어 진화과정을 잘 읽어낸 인물입니다.

그는 오프라인 시대에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중동과 아프리카에 특파원으로 파견돼 현장기자로 명성을 날린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특히 지난 1993년 미군이 소말리아 군부 제거를 위한 작전에서 블랙호크 헬기 2대가 추락해 18명의 사상자를 낸 참사를 특종 보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전쟁 스토리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 28일간 시리즈로 연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998년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리에 있을 때는 기사를 각색해 책으로 출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 기사는 헐리우드로부터 거액에 팔려 영화로도 제작됐습니다. 단순한 이야기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횡재를 안겨준 것입니다.

하지만 로젠탈 소장은 인터넷 등장으로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리 편집국장으로 재직 당시 인터넷 영향으로 이익이 급감하면서 2005년 회사가 단행한 구조조정에 맞서다가 해고당했습니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리는 630명의 기자를 두고 연간 6억 7,500만 달러 예산을 쓰는 상장 언론사로 순이익이 25%에 달할 정도로 이익에 치중했으나 온라인의 물결에 휩쓸려 경영난에 직면했습니다.

그는 해직 이후 뉴욕 소재 명문대학 컬럼비아 저널리즘 스쿨에서 강의를 한 바 있습니다.

이같은 언론환경 변화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저널리즘과 접목시킬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 왓치·미국의 비영리 탐사보도기관

그 산물로 태동한 것이 탐사보도 온라인 전문매체 캘리포니아 왓치입니다.

◇창조적 사고로 독자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내러티브 작가

그는 인터뷰에서 "특파원으로 계속 남고 싶었으나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에 종사하는 운명을 갖게 되었다"며 "풍부한 현장경험과 신뢰가 기자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좋은 콘텐츠는 라디오, 신문, SNS 등 여러 플랫폼에서 회자되는 빅마우스(big mouth)이다"면서 "그동안 상업적 언론모델에 치중했으나, 앞으로 다른 형태의 창조적 언론모델을 구현하고 싶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습니다.

결론적으로 기자가 디지털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창조적 사고를 가지고 독자에게 '흥미'를 유발하는 내러티브 작가이자 온·오프라인을 통섭하는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오늘날 기자라는 직업은 과거보다 훨씬 역동적이면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직업'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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